Irum
이름에 대한 고민. 내 이름은 강정구다. 성이 강이고 이름은 정구. 보통 해외에선 성을 나중에 불러서 이곳에 있을땐 굳이 성을 이야기 하지 않고 (왜냐 이야기하자면 정구강 이래야 하니까 제도 상, 강정구 라고 했을 때 강이 성이란 걸 들키면 또 이야기가 길어지고 골치아파진다. 뼈가 있는 이야기도 아니고) 정구라고 말한다. 아임정구. 한때는 그니까 내가 호주를 갔을 때에 그때만해도 아 이제 나도 영어 이름이 필요할 때가 되었구나 싶어서 고민을 해봤다. 성격상 남과 좀 다르고 멋진걸 해보고 싶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부끄러운 짓이다! 그때 무렵 미스터미시간이 Zach를 알려줬다. 어디서 주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그럴싸했다. Z에서 나오는 아우라가 맘에 든다. 그리고 전부 합체되어 만드는 형상과 발음도 좋다. 그걸로 해야겠다 싶었다. 호주에 실전에 써먹는데 잘 못알아 먹는다. 주로 Jack?? what Jackie chan? 이렇게 되묻기도 한다. 어느 시점에서 아 제트발음도 안되는데 무슨 개짓거리인가 싶어서 단숨에 바꿨다. Jack 으로. 이름을 단숨에 바꾼다. 어찌보면 참 없어보이는 행위이긴하다. 한편으로는 이름이 대수인가? 인간의 대표적인 꼬리표 2개 이름과 나이.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아직까지는. 그래서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결코 만 나이 계산하는게 귀찮아서가 아니다. 나이가 많던 적던 존중 받아야 할 대상이라 생각한다. 그러면 이름은? 이름은 단순히 누군가를 부르는 문자 혹 약속에 불과할까? 이름은 그래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라를 살린다. 곧게 바르게 자란다 와 같은 한자 뜻풀이 말고. Hey 혹 야 보단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낫지 않는가? 김춘수의 꽃에서도 나오지 않는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누군가로 하여금 단순히 야 혹 Hey의 존재로 남기 싫은 것이다. 그래서 요새는 내 이름은 무엇인가? 한때 Jack이 약속을 깨기 싫어 계속 사용했다. 그러다가 Jack을 사용했던 호주를 떠나니 나를 Jack이라고 불러주는 사람도 더 이상 존재치 않았다. 그리고는 새롭게 내 이름을 물어오는 사람이 있으면 그냥 정구라고 말했다. 물론 무척이나 어려워한다. 하지만 나는 정구가 좋다. 그렇다고 내가 테니스라고 불러달라고 하기도 힘들다. 그렇다고 성을 불러달라고 하기에도 좀 허접하다. 캉캉~ 강! 헤이 간~ 강 발음도 쉽지 않더라. 그래서 요새는 가끔 이렇게 설명한다. Django 랑 비슷한 정구 라고 그러면 대충 아~ 그러다가도 장고로해 장고로 라고한다. 그럴까? 이게 쉽고 왠지 멋있기도 한데... 근데 또 이게 용납이 안되더라. 장고? 모르는 사람이 들을 땐 자칫 우스울 수 있다. 에이시언 쟁고? ... 가끔은 귀찮다. 어차피 기억도 못할 거면서 이름을 물어보는 것 자체가. 어느 영화에 보면 번호로 부르기도 하던데 로봇처럼 말이지. 나 자신을 남에게 알리기엔 그 까짓 이름이 무슨 상관이리.
ㄴ 백남준을 남준 바잌 이라고 하는 교수님의 말을 듣고 수업 중에 이런 생각을 했다.